조회수 4367
작성자 윤은영
제목 알파고의 기억과 인간의 기억
등록일 2016-03-15

2016년 3월 14일 자 매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3645&yy=2016

 

알파고의 기억과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다를까? 인공지능을 만들 때 기억을 형성하는 방법은 중차대한 문제이다. ‘기억의 형성은 바로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단순히 저장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입력된 정보들끼리 그물망을 형성하여 복잡하고 다양한 규칙을 익히고 통찰하는 능력을 얼마만큼 갖추었느냐에 따라 인공지능으로서의 성공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다. 통찰력이나 직관은 고차원적인 뇌의 기능으로 기억의 형성 과정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알파고의 기억체계에는 바둑에 대한 지식이 저장되어 있다. 새로운 수가 들어오면 새로 학습하고 저장한다. 이때 기존에 존재하던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연결하여 업데이트한다. 그러면 지식은 재구성된다. 이세돌 9단의 뇌 속의 기억시스템에도 바둑에 대한 지식이 들어있다. 새로운 수를 배우면 새로 학습하고 저장한다.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새로 받아들이는 지식을 연결하는 점도 알파고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알파고의 기억과 이세돌 9단의 기억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감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 용어로 이야기하면 기억을 표상하는 방법에서 우선 차이가 난다. 우리의 뇌 속에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정보에 대한 표상은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지니고 있는 표상 체계는 지극히 구체적이다. 이러한 표상 방법은 알파고가 1200대의 CPU를 쓰던 12개의 CPU를 쓰던 CPU 대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본대로 배운 대로 기억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뇌가 세상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면 사진을 찍듯이 기억에 선명하게 저장되지 않는다. 2015UCLA대학 심리학과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85명의 학생에게 애플 로고를 얼마나 정확하게 회상하는지 그리게 했더니 오직 1명의 학생만이 완벽하게 그렸다. 로고를 회상하기 전에는 자신의 기억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지만 막상 기억 안에 들어있는 정보를 인출해보니 실제 기억과 차이가 있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에 대해 확신하는 경향이 있지만 인간의 기억시스템에는 지극히 세부 사항까지 구체적으로 저장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기억을 가진 알파고가 인간보다 더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단 알파고의 기억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짜는 알고리즘으로 계산할 수 있고, 저장된 기억은 인간보다 더 정확할 수 있다. 반면 인간의 기억은 세부적이고 구체적이기 보다 전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통찰력과 직관 그리고 창의성도 가능하며 반대로 착각도 일어난다. 잘못된 기억이 생성되기도 한다. 허사비스는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표상 방식을 인공지능에 적용하면 구체적인 지식의 저장과 더불어 통찰력과 창의성까지 지닌 가공할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표상 방식은 아직까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베일이 조금씩 벗겨질 때마다 허사비스는 당연히 인공지능에 적용할 것이다.

 

인간의 뇌는 입력되는 정보를 모두 처리할 수 없다. 오감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부분의 정보만을 받아들여 뇌에서 처리한다. 또한 뇌는 용량이 제한되어 있어서 걸러져서 들어오는 정보도 한꺼번에 처리하지 못한다. 뇌에서는 정보들끼리 경쟁도 일어난다. 이때 주의력이 개입되고 주의를 받은 정보가 우선적으로 처리된다. 들어오는 정보를 족족 처리하고 저장하는 알파고와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대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의 위력을 겁내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 속에서는 알파고가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능력이 작동하고 있다. 허사비스는 알파고와 인간의 기억 차이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렇다면 그는 이 대국을 통해 무엇이 제일 궁금할까? 알파고는 바둑의 규칙도 학습하고 나름의 통찰력도 지니고 있다. 문제는 난제를 만났을 때 실수 없이 이에 대처하여 해결해 나가야 하는 능력이다. 이는 1200대의 CPU3000대로 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창의성 (creativity)과 생각의 유연성(flexibility)이 알파고에 얼마나 잘 구현될 수 있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난 허사비스가 이번 대국을 통해 인간의 뇌, 사고하는 방식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고 어떤 아이디어를 받았을지 너무 궁금하다. 사람의 생각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진기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을 잘 짜는 능력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바로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